640page
64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동의 주민들은 소개해 성 안에 들어와야 했다. 현재 종낭굴은 4·3이 끝난 후에도 복구하지 못해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 있다. 한편, 위미리에서는 서북청년회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 이들은 위미지서 순경 들과 함께 근무했는데 주민들은 이들 서청단원 중 차서방이라는 사람을 잊지 못 한다. 그는 주민들을 걸핏하면 폭도로 몰아 괴롭혔다. 위미리의 주요 주민학살사 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1월 28일: 무장대의 1차 습격으로 강대윤(47, 남)을 비롯한 22명이 살해 됨. 이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만규(67, 남) 등 2명이 학살되 고 부상을 입음 12월 31일: 무장대의 2차 습격으로 강관삼(41, 남)을 비롯한 8명의 사상자 가 발생함 1949년 1월: 오동학(47, 남, 위미리의 인명사숙 교사 역임)을 비롯한 오동 화, 현상록 3명이 토벌대에 연행된 뒤 정방폭포 인근 무죽시에 서 총살됨 (동홍리-학살터-무죽시, 참조) 10월 2일: 오송률(20, 남)이 2차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제주 비행장에서 총살됨 현재 정부가 인정한 위미리 4·3희생자는 모두 50명(남자 40명, 여자 10명)이다. 1) 잃어버린 마을 - 종낭굴 가. 소재지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4232번지 일대, 신례리 560-6번지 일대 나. 개요 종낭은 족낭, 족남과 함께 때죽나무를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종낭굴은 신례 1리 와 위미 1리를 경계하는 하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흩어져 있던 마을이다.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