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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2025년 4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은 명목일 뿐 해녀들을 수탈하기 위한 하나의 조직에 불과했다. “교활한 객주(客主)와 일본인은 어찌나 사람을 속이는지 실제로는 100근인 것을 90근으로 세는 관행을 만들고 그 외에도 상대방의 눈을 감쪽같 이 속이기 때문에 해녀의 수입이 되는 것은 100 근 중에서 70근도 되지 않았다.” 해녀회 조직, 관제 해녀어업조합에 맞서 이는 해녀들의 현실을 『동아일보』(1920.4.22)가 보도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해녀들은 자생적으로 해녀회를 조직하고 부당한 관제(어용) 해녀어업조합에 맞서 나갔다. 이들은 해녀들의 침해 받고 있는 권익을 묵살하고, 목숨을 걸고 채취한 해 산물이 공동판매되지 않고 특정 일본 상인이 독점하 도록 했으며, 조합과 결탁한 갖은 명목의 잡세 징수 등으로 영세해녀들을 괴롭혔다. 또한 이들의 적절치 못한 처사에 대해 해녀 대표자들은 수차례에 걸쳐 주재원들에게 부당성을 지적하며 시정을 건의하였 다. 그러나 시정은 커녕 그 수탈상은 더욱 가중되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에 부닥치자 부덕량 지사 를 비롯한 부춘화, 김옥련 등 해녀 대표들이 대규 모 시위를 주도했던 것이다. 이 일로 부덕량 지사는 일 본 경찰에 잡혀가 6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하는 옥고 를 겪었다. 스물한 살 때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부덕 량 지사는 스물 여덟 살의 젊디젊은 나이로 삶을 마 감하였다. 부덕량 지사처럼 일경에 잡혀 모진 고문 끝에 후 유증으로 순국의 길을 걸었던 애국지사로는 수원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이선경(애국장, 2012) 지사도 있 다. 이선경 지사는 수원 출신으로 경성여자고등보통 학교 3학년 재학 중에 구국민단(救國民團)에 가입하 여 항일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고문 끝에 19살의 나 이로 순국의 길을 걸었다. 그런가 하면 함경남도 정 평 출신으로 경성에 올라와 노동자로 일하면서 착취 와 억압 속의 노동환경을 개선코자 노동조합을 결성 해녀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부춘화·김옥련·부덕량 지사 (왼쪽부터). 국가보훈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2022년  1월의 독립운동가 홍보물).   제주해녀 시위 보고 기사(『동아일보』 193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