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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낙 몇 십명, 백명을 같이 묻어노니 거, 골릴 수가 있나? 고를 수가 엇어. 어떻게 알아서 찾았느냐면 옷으로. 일본서 와서 얼마 안 될 때니까 옷으로. 아이들이 넷인데 둘은 알아 져. 열 살 난 아이는 정원, 그 다음 여덟 살 난 아인 창학, 그 다음 다섯 살 난 거는 일본 말로 민짱, 민짱 해노니까 잘 몰라. 성은 양(梁)씨라. 마지막으로 어린 아이, 가이는 그 지경 사람들 말이 ‘어디 총이나 칼이나 안 맞아실 거우다’ 했는데 어멍 등에 업혀 있는 것을 꺼낸 보니까, 첨 어디 한 방울도 상헌 딘 없고. 영 업으민 아이가 머리 위로 올라왔 어. 그 땅속더레 팍허게 흙 씌울 때까지도 그 아이는 살았덴. 큰 아이들은 다 총 맞고. 그 열 살 난 아이가 얘기하기를, ‘우리 네 오누이 중에 하나만 살려주시오!’, ‘네 사람 중에 한 사람만이라도 살려주시오!’ 허니까, 그때 경찰관들이 뭔 말을 허는고 허니, ‘너 이제 누구를 의지해서 살 거냐?’고. 경헹 쏘아죽였다는, 그 지방 사람들이 허는 얘길 우리가 들었지. 그 정계생이란 사람,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그 분이 말해줘서 간 찾아왔어.” 당시 이들 5명의 시신은 학살현장에 방치됐다 6개월 정도가 지나서야 수습해 올 수 있었다 한다. 그 후 5명을 두 개의 묘지를 만들어 안장했는데 어머니 무덤 하나, 4명의 아이들 합장무덤 하나 해서 안장했다. 제사는 음력 10월 18일에 지 냈다. 지금은 제사마저 지내는 사람이 없는 상태이고, 묘지는 오병생의 조카가 관 모자쌍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