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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추정된다. 이 시신은 지금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음은 양신생(1924년생, 여)의 증언이다. “겨울 어느 날 새벽 어스름할 때인데 밭 서쪽으로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 다. 그래서 이상하다 하며 창문 틈으로 내다보는데 군인과 사람 몇몇이 밭 구석 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쯤 있다가 총소리가 팡하게 나서 무서워서 다음부터는 그 근처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밭 입구 쪽에 집이 있어서 그 장면을 어렴풋 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 후 시아버지가 그 주변으로 낮게 담을 쌓아서 한동안 그 일대는 경작을 하지 않았 다. 하지만, 소로 쟁기질을 할 때마다 그 돌들이 걸려 불편하니까 치워버리고 큰 막대 기를 꽂아 표시해 두었었다. 나중에 그마저 없어져버려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는데, 그 후 과수원을 조성하면서 땅을 파다가 인골이 툭 올라오자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묻어 버린 일도 있다. 그 인골이 4·3 당시 희생자의 것으로 생각돼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한 또 다른 목격자 김행윤(1931년생, 남)의 증언이다. “군인들이 사람들을 끌고 그 밭으로 가는 것을 보고 몰래 반대편으로 따라갔다. 멀리 담구멍으로 봐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총소리가 난 것으로 봐서 그곳에서 사람들을 학살했구나 하고 짐작했었다. 그 후 현장에 동행했던 삼촌을 통해 들으니 군인들이 군 부동산에 잡혀와 있던 사람을 끌고가서 그 밭에서 학살하고 묻었다는 말을 해서 나중 에 정확히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 현황 현재 이 들렁머리 학살터 주변에는 소나무가 무성하고 경작지도 전보다 늘었 다. 또한 양어장과 해안도로가 새로 들어서 당시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유해발 굴지 주변에는 현재 비닐하우스가 설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