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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 조천면 남), 김치규(17, 남), 고승한 등 10여 명이 학살됐다. 다. 현황 늡서리의 어원은 정확치 않다. 한자로 ‘늦봄에 내리는 서리’를 뜻하는 만상(晩 霜)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보아 ‘늦서리’의 오기(誤記)로 추정할 수 있다. 표고 488.9m 비고 59m 둘레 1,691m의 야트막한 동산처럼 느껴지는 오름이다. 이곳 곶자왈과 초지 등 늡서리오름 전체가 교래자연휴양림에 편입돼 있다. 현재 늡서 리곶에서 당시 피난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④ 바농오름 가.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108번지 일대 나. 개요 바농오름은 조천면 중산간 일대의 마을이 초토화되면서 인근 주민들이 숨어 살 던 곳이다. 무장대도 일시적으로 주둔했다 한다. 토벌대는 1948년 11월 중순 이후 중산간 마을에 느닷없이 들이닥쳐 무조건 불 을 지르고 주민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토벌대는 주민들에게 해안마을로 소개할 것을 명령했다. 주민들은 혼돈에 빠졌다. 해안마을로 소개하면 생명은 보장할 수 있는가? 가을걷이한 곡식과 우마(牛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도 해안마을에 친인척이라도 있는 집안은 소개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이도저도 아니었던 대 다수의 주민들은 마을과 가까운 곳자왈이나 동굴을 택해 숨어살았다. 얼마 후 일 부 해안마을로 피난갔던 중산간 마을 주민들에게 도피자 가족이라는 멍에가 씌워 지며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는 집안 사람들은 총살 대상이 됐다. 그러자 이들 은 하나 둘 다시 피난입산의 길을 택해 고향마을로 돌아왔다. 바농오름엔 대흘과 와흘 등지의 중산간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조천리의 많은 해안마을 주민들도 올 라와 은신했다. 조천리 양천동 출신 신태호(2003년 74세, 남)는, “불타버린 양천동 집 주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