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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허다했다. 태흥 2구 김경생(1930년생, 여)은 돌을 나르다 굴러 떨어진 돌에 맞아 왼손 손가락 3개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 후 두 손가락은 회복됐으나 중지 는 ㄷ자 형태로 구부러진 채 펴지지 않아 평생 불편함을 안고 살고 있다. 다. 현황 2004년 조사 당시, 태흥 1리 들렁머리 바닷가에 성의 서쪽 끝자락이 높이 2.5m, 길이 10m 정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훼손이 심했는데 2019년 지금은 성담이 모두 사라지고 남아 있지 않다. 3) 학살터 - 들렁머리 가. 소재지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 나. 개요 이곳은 태흥리 주둔 2연대 군인들이 주민들을 학살했던 곳이다. 이곳 들렁머리 지명은 원래 용이 승천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여 들룡머 리로 불리운 데서 유래한다. 보드라운 잔디와 납작하게 엎드린 가스레기나무가 자라는 이곳은 높은 기암괴석 절벽이 이어져 파도가 세게 칠 때는 승천하지 못한 용의 울음 같은 굉음이 퍼진다. 이런 이유로 옛부터 태흥마을은 이곳에서 용왕께 제사를 지내며 마을과 주민의 안녕을 빌었다. 그래서 이곳은 기우금강이라는 별 칭도 있었다. 그러나 4·3 시기, 들렁머리 해안 주변은 주민학살터로 변했다. 이곳에는 태흥주 민은 물론 인근 신흥리와 의귀리, 수망리, 한남리, 멀리는 신례리 주민까지 끌려 와 무참히 학살됐다. 이곳 학살은 1949년 1월 20일께 2연대 군인들이 태흥 1구 군부동산에 주둔하면서 시작됐다. 대표적인 학살일은 1949년 1월 26일로 다른 어느 날보다 많았다. 이곳에서는 그 후에도 크고 작은 주민학살이 여러 차례 이뤄 졌는데 그해 4월께에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곳 희생자를 4·3희생자 신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