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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남원면 령에 따라 피난하면서 덕돌포에 살던 주민들만 남았다가 1949~1951년까지 삼 석동과 입석천, 덕돌포를 중심으로 성을 쌓고 성안에 경찰출장소가 들어서면서 마을은 전보다 규모가 커졌다. 그 후 1961년 8월, 태흥리는 1·2·3리로 행정구역 이 분리됐고 이곳은 태흥 3리가 됐다. 현재 정부에서 인정한 태흥리의 4·3희생자는 모두 104명(남 90명, 여 14명)이다. 1) 잃어버린 마을 - 묵은가름 가. 소재지 서귀포시 남원읍 태수로 143번길 71-9 (태흥리 1404-1번지) 일대 나. 개요 묵은가름은 태흥 1리 리사무소 북쪽 지역으로 의귀천과 접하고 있다. 이곳에는 메머들과 소서를 비롯한 여러 작은 자연마을이 있었다. 주로 현씨, 오씨, 김씨가 거주했다. 소서는 의귀천이 갈라지면서 섬을 이룬 곳으로 내에 깊은 소가 있어서 소서라 불려졌다. 4·3 시기 메머들은 10여 가호, 소서(소소)는 5가호 정도의 주민 들이 살았다. 1948년 11월 8일, 토벌대는 메머들의 많은 집들을 불태웠다. 희생자 김유은 (20세)의 1995년 도의회 4·3피해 신고서에 당시 상황이 잘 묘사돼 있다. “48년 11월 8일이었습니다. 저희 형님은 다음날 일본에 가려고 온종일 자택 방안에 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동네 사람 중 누군가의 밀고로 남원지서 순경 3~4명이 99 식 소총으로 집마당에서 쏘아 죽였습니다. 저희 형님을 사살한 후 태흥리 매머들(속칭) 근처의 초가집 6채마저 태우고 말았습니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당시 밀고자는 남원지 서에서 “폭도 몇 명을 신고하면 순경시켜 주겠다!”는 말에 현혹돼 아무 혐의도 없는 젊 은 사람을 골라 지목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