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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교래리에서는 이날 이전에도 토벌대에 의한 학살이 있었다. 교래리 고해만 (2003년 79세, 남)이 증언했다. “그해 여름에도 사건이 더 있었지. 교래에서 경찰 들이 젊은 사람들을 끌고 오다가 보목곶에서 한 사람, 또 원오름 물통가에서 한 사람을 죽여버렸어. 그 시신은 우리가 뒷날 찾아다 묻어줬지.” 원래 교래리 인근에는 곶자왈과 오름이 많았다. 자연 피난민들이나 무장대의 은 신처가 되었고, 한때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마을 안에 군부대가 일시 주둔하기도 했다. 교래리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4월 14일: 김창옥(22, 남) 등 3명은 전날 마을에 주둔 중이던 서청단원 1 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보초를 잘못섰다는 이유로 와산 지경에서 서청에게 총살됨 11월 13일: 토벌대가 교래리를 초토화함. 이날 강원조(74, 여) 등 33명(교 래리 31명, 조천리 2명)이 총살되거나 불에 타 희생됨. 양복천 (24)·김순녀(3) 모녀는 총상을 입었고, 안성백(65, 남)은 토벌대 에 구타당한 후유증으로 나중에 사망함. 안진옥 처(36)는 토벌 대에 연행된 뒤 행방불명됨 12월 21일: 자수사건으로 김금석(33, 남) 등 5명이 아라리 박성내에서 총 살됨 (아라리-학살터-박성내, 참조) 현재 정부가 4·3 희생자로 인정한 교래리 주민은 73명(남성 42명, 여성 31명)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