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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을 불지름 11월 10일: 무장대가 태흥리를 습격해 구장 송인혁(53, 남)을 비롯한 우익 인사 4명을 살해함 11월 17일: 김갑용(18, 남)을 비롯한 주민 3명이 남원지서 앞밭에서 경찰 에 총살됨 (남원리-학살터-남원지서 앞밭, 참조) 11월 20일: 태흥1구에 검거선풍이 불어 30여 명의 주민이 남원지서로 연 행됨 11월 23일: 무장대가 태흥 2구를 습격해 보초 서던 강찬옥(37, 남)을 비롯 한 주민 5명을 살해하고 향사를 불지름. 이때 2구 향사는 태흥 국민학교 3·4학년이 이용하다 피해를 봄 11월 28일: 무장대가 남원리와 태흥리, 위미리를 대대적으로 습격함. 이날 태흥리에서 김상은(49, 남) 등 6명, 남원리에 머무르던 강항진 (44, 남, 남원면사무소 서무계장) 등 8명, 모두 14명의 태흥 주 민이 피살됨. 보초를 서던 양덕성(26, 남)은 경찰에 오인 사살됨 11월 29일: 토벌대가 전날 무장대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고운명(15, 남)을 비롯한 고인태(28세), 김기환(33세), 이홍우(19세), 정영희(19 세), 한남화(18세) 6명을 학살함 (남원리-학살터-남원지서 앞 밭, 참조) 12월 5~6일: 고경복(24, 남)을 비롯한 6명이 정방폭포 부근에서 토벌대에 총살됨 (서귀리-학살터-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일대, 참조) 1949년 1월 20일께: 의귀리 주둔 2연대 병력이 태흥 1구 군부동산으로 옮겨 주둔함 1~3월: 2연대 군토벌대가 지역주민 29명(태흥리 3명, 수망리 1명, 한 남리 3명, 신흥리 12명, 신례리 2명, 의귀리 8명)을 도피자 가 족이라며 태흥리 들렁머리에서 총살함 (아래 학살터-들렁머리, 참조) 4·3 기간 태흥리의 인명피해는 100명이 넘었다. 4·3은 태흥마을의 구조도 바 꿔놓았다. 현재의 태흥 3리는 1913년에는 삼석동과 덕돌포(덕둑개), 산변포를 합 해 삼덕동이라 불리며 2구에 속했다. 그러던 1948년 11월 삼덕동 주민들이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