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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남원면 2. 태흥리 태흥리는 지형이 광활하고 기온이 온화하며 해안지대를 넓게 끼고 있어서 옛부 터 폴개(벌포伐浦, 현 태흥 2리)라 불렸다. 마을 이름은 조선 말기에는 보한리로 불리다 1902년에 태흥리로 변경됐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태흥리는 태흥 1구, 2구로 분리돼 해방을 맞았다. 그러다 1952년에 태흥리는 한 마을로 합쳐지기도 했으나 1960년 다시 태흥 1리, 2리, 3리로 분리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흥 리는 동으로는 신흥리, 서로는 남원리, 북으로는 의귀리와 접해 있으며 태흥 1리 와 태흥 2리의 사이에 서중천이 흐른다. 태흥리는 4·3 시기 1구와 2구, 그리고 지금의 태흥 3리인 삼덕동이 있었다. 태 흥마을은 1948년 10월에 들어서면서 4·3의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10월 중순께 부터 남원지서에서 주민들을 무차별 연행해 고문을 가하기 시작하더니 11월에 들어서는 인명피해가 잇따랐다. 태흥리의 주요 주민학살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1월 4일: 김석홍(29, 남)이 제주경찰감찰청에 연행된 뒤 고문을 받다 방 면됐으나 후유증으로 사망함 11월 8일: 경찰이 태흥 1구를 덥쳐 김유은(20, 남)을 총살하고 일부 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