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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그게 사태의 근본이야” 하고 토벌대의 횡포에 대해 증언했다. 실제 초토화작전이 벌어지기 이전인 1948년 10월 31일, 선흘국민학교 주둔 9연대는 선흘 주민과 인 근 야산에 숨었다가 붙잡힌 청년 7명을 학교 인근 족지왓에 끌어다가 주민들이 보는 가운데 공개총살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 사건 후 주민들은 너도 나도 숨을 곳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4·3을 겪었던 선흘 주민 모두가 이구 동성으로 증언했다. 다. 현황 폐교됐던 선흘국민학교는 초토화 이후 마을을 재건한 주민들의 노력으로 1950 년 7월 함덕국민학교 선흘분교로 인가 받은 후 1953년 4월 1일, 선흘국민학교 본교로 승격돼 개교했다. 그 후 1995년 함덕초등학교 선흘분교로 개편됐다. 지금 도 옛 학교터는 교사만 현대식으로 바뀌었을 뿐 그대로 남아 있다. 선흘국민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