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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조천면 다. 경찰토벌대가 당시 선흘이나 함덕, 조천 주민들을 동원해 쌓고 이곳에 주둔하 며 주변을 감시했다. 선흘 주민들은 도피입산했던 사람들이 채 귀순하기 이전, 즉 1949년 3월 전에 설치됐다고 기억했다. 성은 2m 높이의 겹담으로 네모나게 쌓 아졌으나 지금은 그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감발레 주둔소는 대천동 서쪽 들게기목에 위치한 경찰주둔소였다. 당시 이곳은 구좌면과 조천면의 경계 지역이었고, 3가호 정도의 주민이 살았다. 지금은 목장 지로 개간돼 옛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② 선흘국민학교 가.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선흘동 1길 41 (선흘리 1019번지) 나. 개요 이곳에는 1948년 10월말부터 9연대 일부 병력이 주둔했다. 선흘국민학교는 1944년, 일본에 살고 있던 선흘 출신 인사들이 학교 설립운동 을 추진하며 같은 해 4월 1일에 선흘간이학교로 개교했다. 해방 후에는 함덕국민 학교의 분교장으로 운영되다가 4·3 전후 교사들이 학교를 비우면서 거의 폐교상 태에 이르렀다. 그 후 이곳에는 1948년 10월말 이후 중산간 마을 초토화작전이 실시되던 시기부터 12월 29일 9연대가 2연대로 교체될 때까지 9연대의 1개 중 대가 주둔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선흘 주민들은 마을에 군대가 주둔하게 되면서 한편으론 무장대의 출입이 줄어들어 편하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론 군인들의 횡포로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점차 공포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어려운 시기를 경험하게 됐다. 고춘석(2003년 71세, 남)이 증언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까 마을 안에 있는 큰 나무에 인 공기가 걸려 있는 거야. 이제 우린 공회당으로 끌려가 중대장한테 니뽄도로 맞았 어.” 김형조도 당시를 떠올리며, “우리 마을에 서청들이 주둔하진 않았지만 군토 벌대나 경찰이 마을에 와서 젊은 사람들을 무조건 패고 하니까 거기에 대한 반감 이 대단했어. 우리도 악이 난 거야. 나중엔 청년들이 도망다니지 않을 수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