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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성의숙 창설자 무량산인(無量山人) 박거수 선생 기념비 이곳은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절 민족의 얼을 깨우기 위해 고성의 선각자 무량산인 박거수 선생이 설립한 민족학교 '철성의숙'이 자리하였던 터이다. 철성의숙은 1908년 설립. 1930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될 때까지 22년간 민족교육기관으로 역할을 담당했다. "사람은 알아야 하고, 알아야만 사람다운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박거수 선생의 육영(育英) 신조였다. 철성의숙의 대표적인 교육 목표는 삼은(三恩)이었다. 삼은이란 국은(國恩). 사은(師恩), 부은(父恩)을 기리는 것으로 이를 통해 국권을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철성의숙은 박진완(朴鎮完)을 초대 교장으로, 선생 자신이 교감 으로, 박상요(朴相堯)와 덕선리 이판수(李判洙)를 학감으로, 평양에 있던 정주 오산학교 출신인 김정행(金貞行)을 중심으로 학교를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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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고성 독립 만세 운동 주도> 1919년 3월 15일 밤. 상해 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조직한 의열단(義烈團) 이주현(李周賢)이 철성의 숙 상회에 지휘본부를 두고 진행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거사가 사전에 누설되면서 만세 운동은 좌절되었 지만 그 불씨는 고성군 내 구만면 등지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고성읍 3.1독립 만세운동의 주역들인 배만두, 이상희, 이진경(李鎮擎)을 당시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범석 장군에게 보내 운남기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이수케 한 후 광복군으로 활동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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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무역 주식회사 설립 및 고성신간회조직 산파역> 무량산인 박거수는 옥기환 등의 애국지사들과 뜻을 모아 도산 안창호 선생과 교분이 있던 마산의 3 독립애국지사 명도석의 주도하에 원동무역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여기에서 나오는 이익을 상해임시 정부의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내주었다. 또한 철성의숙의 본거지인 덕선리 이 군수 집안에서도 고종황제 께서 비밀리에 보낸 특사에게 독립운동자금을 전달함으로써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