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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다음 3건의 학살사건이 확인된다. 1948년 11월 17일, 태흥리 청년인 김갑용(18, 남)과 김석주(18, 남), 오만칠 (17,남)이 총살당했다. 김갑용의 1960년 국회양민학살신고서를 보면, ‘1948년 11월 중순경 당시 한라산 폭도들이 자동차 통행 차단 목적으로 태흥리 당시 입석 교를 파괴하고 도주해버린 후 부민을 동원하고 교량 수선차 가던 도중 당시 남원 지서 근무 경찰관이 폭도로 인정하고 남원지서까지 인치한 후 학살을 집행했다’ 하고, 당시 사정이 신고됐다. 11월 29일에는 전날 무장대의 남원리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남원리 고신송(39, 남)과 오화평(22세), 홍신봉(38세) 3명, 그리고 태흥리의 고운명(15, 남), 고인태 (28세), 김기환(33세), 이홍우(19세), 정영희(19세), 한남화(18세) 6명 등 청년 9 명이 무장대 관련자라는 혐의로 총살됐다. 1949년 2월 6일에는 남원리 주민 홍성문(72, 남)과 처 신성명(69세), 손자 홍 계생(16세)이 도피자 가족이라며 인접한 쉘록개에서 총살됐다. 한편 주민들은 이곳 쉘록개 해안뿐만 아니라 그 서쪽으로 이어지는 구럼비와 쉐누렝이 등지 해안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학살됐다고 증언한다. 남원지서 앞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