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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 조천면 나. 개요 선흘리 초토화 이후 마을 주민들이 은신했다 학살된 곳이다. 1948년 11월 21일 선흘리 일대가 토벌대에 초토화된 후 주민들은 선흘곶 일대 의 곶자왈과 자연동굴을 은신처로 삼았다. 그러나 이런 굴들이 토벌대에 하나 둘 발각되면서 희생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목시물굴에서 1㎞ 남짓 서쪽에 있던 도 툴굴이 11월 25일 토벌대에 발각되면서 많은 주민들이 현장에서 총살당하거나 함덕 대대본부로 끌려갔다. 토벌대는 주민들이 숨어 있는 곳을 대라며 밤새 주민 들을 고문했고, 한두 사람이 목시물굴의 존재를 토해냈다. 11월 26일 아침, 함덕 9연대 토벌대는 길라잡이를 앞세우고 선흘곶으로 향했 다. 목시물굴에서는 전날 도툴굴 학살소식을 아침에 전해 듣고 일부 주민들은 시 체를 수습할 준비를 하고, 더러는 식사를 마련하고 있었다. 토벌대는 선흘곶에 도 착하자마자 무차별 곶자왈 안으로 박격포를 쏘며 묵시물굴로 향했다. 주민들 대 부분은 목시물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일부는 숲속 여기저기로 뛰었다. 김형조 가 당시를 기억했다. “아내와 형님 가족이 목시물굴에 숨어있었어. 주민들도 집에 있다가는 죽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임시로 먹을 것을 싸들고 모두 굴에 숨었던 거 야. 그때 굴 밖에 있던 사람들도 토벌대가 총을 쏘면서 들어오자 대부분이 다시 굴로 숨어 들어갔지. 형님이 나한테 빨리 들어가자고 했지만, 나는 이왕 죽을 거 다른 데로 뛰자고 생각해서 동쪽 숲으로 뛰었어. 순간적으로 왜 그랬는지 모르지 만, 어쨌든 난 그 때문에 살아났어.” 목시물굴은 도툴굴보다 작았지만 당시 200여 명 넘는 대부분의 선흘 주민들이 은신해 있었다. 토벌대는 굴속으로 수류탄을 투척하며 주민들에게 나올 것을 종 용했다. 그러나 굴 밖에 가면 죽을 게 뻔하다는 것을 안 주민들은 나가지 않고 버 텼다. 고춘석은, “군인과 굴 안에 있던 청년들이 말을 주고받으며 몇 시간 대치했 지. 결국 아이들이라도 살려야 된다는 굴 내부의 의견이 모아지면서 밖으로 나가 기 시작했어. 내가 거의 마지막에 나왔는데 벌써 굴 밖에는 총살당한 시신들이 뒹 굴고 있었어. 태어나서 백일도 안 된 애기도 죽었고, 50세 넘은 노인도 쓰러져 있 었어” 하고 증언했다. 군토벌대는 전날 고문을 받고 목시물굴을 안내했던 한아무 개도 현장에서 총살했다. 김형조가 말을 이었다. “목시물굴에 들어가지 않은 우리 네 명이 덕천리 지경의 높은오름에 앉아 정황을 살폈지. 낮 시간이 되니 연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