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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나. 개요 이곳에서는 1948년 11월 17일, 오화선(39, 남)을 비롯한 김용오(46, 여), 현금 석(17, 남), 현상준(27, 남), 현은찬(50, 남) 등 남원 상동 존다리못과 버너리굴 주 민 5명이 집단총살 당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그 후에도 더 많은 주민들이 학살돼 12명에 이른다. 1 11월 17일, 남원지서는 남원에서 의귀리로 가는 굴머루 길을 무장대가 돌로 차 단하자 민보단원들을 인솔해 도로를 청소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존다리못으로 가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붙잡아 남원지서로 끌고갔다. 이날 저녁, 응원대는 붙잡아 온 주민들을 이곳 진쟁이 소금밭에서 학살해버렸다. 남원리 민보단원으로 이날 작전에 동원됐던 양상석(2004년 79세, 남)은, “남원 상동에 존다리못이라고 헌 디가 있어요. 그 부근에 있는 사람들 다 잡아왔어요. 보러 뎅기면서 집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잡아왔죠. 다 양민들이거든요. 그런 다음 지서에 오자 응원대에 맡겼어요. 응원대는 그 사름덜을 곧 소금밭으로 데려다가 는 어둑해지니까 다 총살해버렸지” 하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날 총살당한 사람들 은 노약자나 부녀자가 많았다. 양씨는, “그때 60대, 현아무개 노인넨디 살려만 달 라고 했어. 우린 왕 죽여불카부덴 생각도 안 했지. 살려만 달렌 몸부림허는디 지 서엔 오난 그냥 집어놔부렀어. 게난 그 사름 때리는 것이, 죽기 아니믄 살기로 때 려…”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양씨는 이날 한 사람이 총에 맞고도 살아났으나 다 시 끌려와 죽음을 맞았다고 했다. “다 죽였는데, 한 사름이 살아났어. 총소리 나니까 팍 엎드려서. 죽어시카부덴 내분 거지. 그 사름은 이제, 밤 깊으니까, 그 동쪽으로 가민 하천이 있어, 내창. 글로 해서 그 남원 상동으로 올라갔어. 자기네 집으로. 그루후제 집에선 살지 못허연 산으로 도망갔 어. 결과적으로 그 사람도 잡현 죽었어. 그러고 오화선은 60세 넘은 아버지를 빼내러 왔다가 아버지 대신 죽었어. 또 진쟁이 에서 희생당헌 주민 중 태흥리 문관호 부자는 3일 간격으로 아버지와 아덜이 희생됐지. 1) 1948년 11월 28일: 의귀리(4명) - 고기은(34, 남), 김만규(34, 남), 신공범(18, 남), 오기섭(20, 남) 1948년 12월 11일: 의귀리(3명) - 고성춘(61, 여)), 김광윤(20, 남), 한경원(21,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