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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조천면 갈 수 없었던 주민들은 ‘며칠만 숨어 있으면 사태가 끝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 을과 가까운 천연의 피신처인 선흘곶의 동굴로 임시 몸을 피했던 것이다. 선흘 주민들의 소박한 바람은 처참한 학살극으로 다가왔다. 숨어 지낸지 나흘 째 되는 날인 11월 25일, 굴이 발각됐다. 당시 굴에는 젊은 청년이 25명가량 숨 어 있었다. 그날 선흘곶 주위를 포위해 사방을 감시하던 군인들은 마침 굴 밖에 나와 있던 주민 한 명을 붙잡아 사람들이 숨어있는 곳을 대라고 윽박질렀다. 죽이 겠다는 위협 앞에 굴의 위치는 곧 알려졌고, 군토벌대는 바로 굴로 가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 이 과정에서 몇 명의 청년이 군인들 총격에 굴 안에서 사망했다. 청 년들은 혼비백산했다. 그러나 청년들은 총을 쏘며 들어오는 군인들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곧 모두 체포됐다. 안모 청년만 굴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체포를 면할 수 있었다. 밖으로 끌려나온 주민들 중 일부는 굴 인근에서 바로 총살됐고, 나머 지는 함덕 군주둔지로 끌려갔다. 그날 학살된 선흘 주민은 고성규(17, 남) 등 22 명이다. 이곳에서 형 고원석을 잃은 고춘석(2003년 71세, 남)은, “형님과 나는 분산해 숨어야 어느 한쪽이라도 산다고 해서 나는 목시물굴, 형님은 도툴굴에 숨었지. 며 칠 뒤 시신을 수습하러 와보니 인근 숲속에 50㎝ 정도의 나무명패가 꽂힌 채로 흙과 돌멩이로 덮어져 있었어”라고 증언했다. 그는 인근 목시물굴에 은신하면서 도툴굴에 형을 만나러 세 번 정도 왔었다고 했다. 또한 목시물굴에 숨었다가 군인 들이 들이닥치자 숲속으로 뛰어들어 살아났던 김형조(2003년 82세, 남)는, “목시 물굴이 토벌대에 습격당한 뒤 벤벵듸굴에 갔었지. 그런데 그곳도 곧 기습을 당해 나는 가까스로 빠져나와 이곳에 왔어. 도툴굴과 목시물굴 주변에 시신이 널려 있 었어. 그 시신의 반 이상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검게 그을려 있었어. 기 름을 붓고 불태운 거야. 넋 놓고 있다가 안 되겠다 싶었어. 까마귀나 개들이 시신 을 훼손하지 못하게 흙이라도 덮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지. 그때 살아난 사람 네 명 이 시신들을 가지런히 놓고 흙을 씌웠어. 그런데 뒷날부터 유족들이 하나 둘 찾아 와 시신을 헤집으며 찾는 통에 다시 엉망이 돼버렸어. 그래서 고적석이란 사람과 나무를 반쪽으로 깨서 명패를 만들고 흙을 다시 씌웠지. 그 명단을 종이에 적어 내가 하나 갖고 다른 하나는 작은 단지에 담아 새동네 자왈 속에 묻어뒀는데 나중 에는 못 찾았어” 하고, 아프게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