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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형님을 데리고 가더라고. 그런데 십분 정도 있으니까 총소리가 막 났어. 다행히 사촌형님은 그때 희생당하지 않았어. 그때 군인들은 너희들도 잘못하면 이런 꼴 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동네사람들에게 그 총살현장을 일부러 구경시킨 거 지” 하고 증언했다. 그날 선흘 주민 김삼봉(37, 남), 김창윤(36, 남), 오문훈(24, 남), 윤응권(36, 남, 이명 윤현권)과 인근 야산에서 붙잡혀온 북촌 주민 김성진(57, 남), 이만원(23, 남), 이양선(21, 남) 등 7명이 이곳에서 학살됐다.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의 민간인 이 총으로 학살되는 장면을 처음 본 선흘 주민들은 이때부터 ‘이러다간 다 죽겠 다’는 위기의식을 체감하게 됐다. 김형조가 말을 이었다. “족지왓에서 사람 죽이 는 것을 주민들이 보니까 그때부터는 어디로 가면 살지를 몰라 모두 숨어 사는 생 활을 하게 됐지.” 다. 현황 족지왓은 도로에서 밑으로 움푹 들어간 형상의 밭이었다. 지금은 족지왓 모두 가 감귤밭으로 개간됐다. 5) 은신처·학살터 ① 도툴굴(반못굴) 가.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26번지 나. 개요 선흘리 초토화 이후 마을 주민들이 은신했다 학살된 곳이다. 1948년 11월 21일 선흘리 일대가 토벌대에 모두 불탔다. 일부 주민들은 함덕 이나 조천 같은 해안마을로 피난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흘곶에 있는 이곳 도툴굴과 인근 목시물굴에 분산해 숨어 살았다. 우마와 가을걷이한 곡식을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