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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제주읍 러던 1948년 10월 31일, 편집국장 김호진(金昊辰)이 제주읍내에 살포된 이덕구 의 포고문과 담화문이 제주신보사에서 인쇄된 것이라는 혐의로 끌려가 조사를 받 다가 이날 다른 직원 2명과 함께 처형됐다. 제주신보가 겪은 고초 중 으뜸가는 것은 ‘서청에게 신문사를 통째로 뺏긴 일’일 것이다. 4·3 시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서청은 1948년 12월 25일, 제주 신보사에 난입해 저항하는 김석호(金錫浩) 사장과 김용수(金瑢洙) 편집국장을 쫓 아내고 강제 접수했다. 서청은 그 후 제주도단장이었던 김재능을 발행인으로 하 고, 편집국장에 김묵을 기용하여 신문 발행을 주도했다. 제주신보는 경영권을 강탈당한 약 10개월 후인 1949년 10월 12일, 서청이 불 법으로 신문사를 접수한 사실을 정부에 강력히 호소하여 1950년 3월 제 자리를 찾았다. 서청은 변칙 운영한 1년 3개월 동안 왜곡보도를 일삼음은 물론 1945년 창간 이후의 신문보관철이며 관련서류를 모두 불태우는 만행을 서슴치 않았다. 4·3연구소는 1991년 2월, 그간 베일에 가려졌던 제주신보를 발굴해 영인·출판 했다. 당시 발굴된 제주신보는 138호~328호로 1년 4개월(1947. 1. 1.~1948. 4. 20.)분이었다. 과제도 남았다. 제주신보의 나머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우선, 첫 발 행된 1945년 10월 1일부터 1946년 12월 31일까지 14개월 치(1호~137호)와 제주신보사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