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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서귀면 나. 개요 무죽시는 서귀포 시내에서 정방폭포를 지나 보목동 방향으로 막 들어가는 길목 오른쪽 일대이다. 동홍리의 동쪽, 소정방폭포 윗 지경에 해당된다. 예전에는 논밭 지대로 굴렁진(움푹 패인) 곳이었다. 무죽시의 어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지역 주민들은 정방폭포를 큰무죽시, 그리고 소정방을 는무죽시, 그 일대를 무 죽시로 불렀다. 이에 대해 토평초등학교에서 발간한 향토지(1987)는, “소정방은 옆에 유명한 정방폭포가 있는데 이 폭포보다 작은 폭포라는 데서 소정방이라 불 리우나 한편 이 폭포 부근은 발드릴(밟을) 곳이 없어서 위험하고 폭포물이 가늘게 흐른다는 데서 는무족시라 칭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서귀면과 남원면, 중문면 일대의 주민들이 무장대 협조자라거 나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 수시로 총살됐다. 양병출(96세, 여)은, “정무시 동산에 서도 하영 죽었주만은 무죽시에서가 막 하영 죽었주. 그디가 높앙 무서운 디라. 사람 죽으난 털어지멍 걸련 끄서냈주”하고 증언했다. 1948년 11월 15일엔 이곳 에서 도순리 주민들이 총살됐다. 토벌대는 당시 도순국민학교 운동장에 주민들을 집결시키고 도피자 가족이라며 6명을 호명해 서귀포경찰서로 연행한 후 이틀 뒤 에 이곳에서 총살했다. 1948년 12월 23일엔 남원면 신흥리 청년 4명이 총살당했는데 희생자 김의봉 (31, 남)의 국회신고서를 보면 ‘1948년 12월 18일 남원지서 주임의 명령에 의해 당시 이장이 부민회의를 소집하여 전기 피학살자도 그에 참석하였든 바 수십명의 청년을 폭도라고 지서에 연행. 일부는 지서에서 총살하고 일부는 경찰에서 호송 하여 동월 23일 하오 3시경 서귀포 정방폭포수 밑 논밭에서 집단으로 학살함에 전기 피학살자도 그 중의 한사람으로 학살당하였음’이라고 되어 있다. 이날 고봉 옥(25, 남) 등 3명도 같이 총살됐다. 1948년 12월 30일엔 도피자 가족 학살로 동홍리 이영춘(58, 여)이 며느리 두 명과 함께 총살당했는데 당시 두 며느리는 서로 손이 묶여 있었다 한다. 아들 오 기준(26, 남)과 상준(34, 남) 형제가 도피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날 서홍리 허영 화(20, 남)도 이곳에서 총살됐다. 도의회신고서는 ‘1948년 음력 12월 1일 소정방 주위 논밭에서 산에 입산한 사람들과 동조했다는 이유로 총살’되었다고 했다. 이외에도 이곳에서는 여러 차례 주민 총살이 있었으나 학살의 전체적인 규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