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page
61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때문이다. 이날, 많은 가옥들이 불에 탔고, 30여 명이 넘는 민간인이 살해됐다. 당 시 정남국은 처와 자녀를 포함한 11명의 일가족이 퇴각하는 무장대에 끌려갔다 학살되기도 했다. 한편 무장대 습격이 있기 10여 일 전인 11월 17일, 응원경찰과 민보단은 남원 2리 월산동의 존다리못을 기습해 주민들을 붙잡고는 남원리 해안의 소금밭인 진 쟁이로 끌고와 10여 명을 학살했었다. 남원2구는 4·3 시기 100여 가호 이상의 주민이 살던 작지 않은 마을이었다. 2 구 주민들은 1948년 11월 마을이 초토화된 후 일부는 남원1구 등 해안마을로 피 난을 가기도 했으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많은 주민들은 인근의 야산이나 궤 에 의지해 고단한 피난생활을 이어갔다. 당시 1구로 피난했던 2구 주민들은 남원 포구 동쪽 바닷가에 함바집을 짓고 수년간 집단생활을 했다. 그러다 토벌대에 도 피자 가족으로 몰려 학살되기도 했다. 그 후 1953년께, 남원2구 주민들은 의귀리 와 한남리, 수망리 주민들과 함께 존다리못을 중심으로 성을 쌓고 3~4년 간 집단 생활을 하다 고향 마을을 복구해 귀환했다. 그러나 남원2구의 외진 곳에 있었던 버너리굴은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잃어버린 마을로 변했다. 남원리의 주요 주민학살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1월 17일: 토벌대가 남원리의 해안가 마을 진쟁이 소금밭 지역에서 오화 선(39, 남)을 비롯한 12명(남원리 5명, 의귀리 7명)을 총살함 (아래 학살터-진쟁이 소금밭, 참조) 11월 28일: 무장대가 남원리를 기습해 강원호(67, 남)를 비롯한 고기평(44 세), 김계호(78세), 김기송(60세, 여), 김봉호(24세), 김성진(69 세), 김열(35세, 여), 김창옥(17세), 부기평(24세), 서봉진(52 세), 송좌옥(32세), 신순자(5세, 여), 양갑손(61세), 양근손(40 세), 오갑출(35세, 여), 오려은(61세, 여), 오성후(56세), 오성훈 (41세), 오승향(39세, 여), 오인배(13세), 오정선(32세, 여)·김덕 윤(7세) 모자, 오지홍(16세), 이정생(51세, 여), 장승도(27세), 정순오(17세, 여), 정필반(27세), 현경렬(19세, 여), 현규빈(48 세) 29명을 무차별 학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