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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 조천면 리고 어두워지면 함덕으로 내려가 자고, 다시 아침이면 낙선동에 성을 쌓으러 오 는 생활을 한 달 정도 했어.” 성을 쌓는 데는 선흘 주민만이 아니라 조천면 관내의 타 지역 주민들도 대거 동원됐다. 성을 쌓는데 동원됐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등 짐으로 돌을 날라서 어깨나 등이 다 벗겨졌지” 하고 당시를 아프게 증언했다. 성의 규모는 대략 가로 150m, 세로 100m, 높이 3m, 폭 1m 정도로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고학봉이 해자도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성 밖으로 너비 2m, 깊이 2m 정도의 도랑을 파서 가시덤불을 놓아 폭도의 침입을 막으려했지.” 1949년 4월, 성이 완공되자 선흘 주민들은 겨우 들어가 잠만 잘 수 있는 함바 집을 줄지어 짓고 집단생활에 들어갔다. 성 안은 수용소나 다름없었다. 성 밖 출 입은 통행증을 받아야 가능했고, 밤에는 일체 통행금지였다. 다음 해,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그나마 살아남았던 청년들이 대거 군에 자원입대했다. 성을 지키는 보 초 임무는 16살 이상의 여성과 노약자들의 몫이 됐다. 이들은 낮에는 밭에서 일 하고 밤엔 성을 지키는 고단한 생활을 이어갔다. 힘든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성 안에 있던 경찰파견소 주둔 경찰의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일도 주민들 몫 이었다. 주민들이 보초를 잘못 섰거나 졸다 경찰에 들켜 폭행당하는 일도 빈번하 게 벌어졌다. 산사람들이 가끔 성 위로 나타나 연설을 하거나, 기습하다 토벌대의 정비 전의 낙선동 4·3성(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