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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원리 남원리는 놀란이머들동네(비안동)와 제산잇개(제산포), 넙으못동네(광지동)를 중심으로 형성된 해안마을인 1구와 운지악 동북쪽에 위치한 서의리(서옷귀), 남 쪽의 톨동산(월산동), 서남쪽의 순물동네(수은동) 등 세 개의 중산간 마을로 형성 된 2구가 있었다. 남원리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면사무소가 의귀리에서 남원으 로 이설되면서 남원면의 중심마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후 1935년 1, 2구로 분리되었다 1950년에 제주도의 지침에 따라 단일리로 합쳐졌으나 주민 편의상 1953년에 다시 1, 2리로 분리됐다. 남원리는 남원읍의 중심지인 해안마을로 동 쪽으로 태흥리, 서쪽으로 위미리, 북쪽으로는 한남리와 이웃하고 있다. 제주읍 제주북국민학교에서는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식이 3만 명의 주민 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당시 제주읍과 조천면, 애월면은 공동으로 제주북교에서 행사를 치렀지만 나머지 지역에서는 면단위로 별도로 치러졌다. 남 원면에서는 남원국민학교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1948년 4·3무장봉기가 발발한 이후에는 남원리가 남원지서와 면사무소가 있어 남원면 일대 토벌대의 근거지가 됐다. 남원주민들은 1948년 11월 28일을 ‘4·3사건의 시작’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이 날 무장대가 남원리를 습격해 민가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보이는 대로 학살했기 609 남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