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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라. 찾아가는 길 낙선동에서 서쪽 대흘 방면 도로로 300m 정도 가다보면 방앗돌 몇 개를 쉼터 로 삼은 정자나무가 보인다. 그곳 옛 올레로 들어가면 과수원으로 개간된 집터에 군데군데 대나무가 자랐던 흔적이 나타난다. 정자나무 서쪽에 돗바령이라는 버스 정류장이 있기도 하다. 2) 4·3성 ① 낙선동 4·3성 가.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선흘서5길 7 (선흘리 2720번지) 나. 개요 1948년 11월 21일 선흘리가 초토화작전으로 불타버리자 마을 주민들은 인근 선흘곶으로 들어가 자연동굴이나 들판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그러나 며칠 지나 지 않아 은신했던 굴이 잇따라 발각되고 주민들은 많은 희생을 치렀다. 해안마을 로 소개 내려간 주민들도 도피자 가족 혐의로 많이 학살됐다. 아픈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은 주민들은 1949년 봄, 낙선동에 성을 쌓고 집단거주하기 시작했다. 당시 4·3성의 축성은 초토화됐다 재건되는 중산간 마을은 물론 해안마을까지 무장대의 습격을 방비한다는 명분으로 제주도 전역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것은 군경토벌대가 주민들과 유격대와의 연계를 차단하고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감시· 통제할 목적으로 조성했던 전략촌 건설사업의 한 유형이었다. 축성작업은 주민들 을 총동원해 시행됐다. 마을성을 쌓는 작업은 군경주둔소를 쌓는 작업보다 더욱 힘든 일이었다. 마을을 두르는 성의 규모가 주둔소에 비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선흘리는 해안마을로 피난갔거나 감금됐던 주민들을 총동원해 1949년 봄 한 달 동안 축성작업을 계속했다. 선흘 본동 출신으로 낙선동에 살았던 고 고학봉 (2003년 71세, 남)이 당시를 기억했다. “낮엔 경찰의 감시 하에 성을 쌓았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