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page

60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이도일의 상당한 노고가 있었다. 그 후 신유의숙은 전도적으로 인기가 높아져 교 사 일부를 제주읍에서 초빙하기도 했다. 당시 교사들 중 제주도를 대표하는 유명 한 항일운동가와 지식인으로는 이신호, 김한정, 송종현, 장종식, 이도일, 김태능, 박용후 같은 분들이 있다. 신유의숙은 1922년 4월 2일, 가파 신유의숙으로 정식 개교해 지역 인재들을 기르다 강제폐교를 당하기도 하며(1932. 4.~1933. 4. 1.) 수난을 겪다, 해방 후인 1946년 11월 1일, 공립 가파국민학교가 개교하며 인계 됐다. (졸업생수 총 150명) 그 후 가파도 주민들은 ‘교육에 있어서는 어느 마을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 심을 갖고 학생이 얼마 안 되는 가파국민학교를 지키려 부단히 노력했다. 1981 년 들어 가파도민과 신유의숙 문하생들은 ‘가파 신유의숙 개교 60주년 기념행사’ 를 갖고, 김성숙을 추모하기 위한 동상 건립을 계획했다. 그리고 1년 후인 1982 년 2월 동상을 제막했다. 한편 김성숙은 4·19혁명 직후 정계에 입문해 야당인 사회당의 당수로 국회의원 을 지내기도 했다. 가파리 출신자들 중에는 4·3 시기 이도일과 김한정 등 유명 인 사들이 많았다. 다음은 가파리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록이다. 1948년 6월: 강성태(18, 남, 대정중학생)는 모슬포에서 자취하며 학교를 다 니고 있었는데 대정중학생 일부가 입산한 6월 미상일에 대정지 서로 연행된 뒤 행방불명됨 12월 3일: 양형종(62, 남)과 이창하(18, 남)는 9연대 탈영병 문덕우를 찾 기 위해 토벌대가 주민들을 가파국민학교에 집합시키자 그 자 리에 나갔다 총살됨. 이날 학살에는 신원미상의 희생자가 1명 더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 12월 초순: 인성리 출신 오순만(23, 남)이 경찰에 연행된 뒤 가파리 섯바위 에서 공개총살됨 12월 9일: 가파국민학교 교사였던 강군섭(25, 남)과 이원함(21, 남)은 이 틀 전 토벌대에 의해 모슬포로 연행됐다 이날 알뜨르비행장 인 근 대낭골에서 총살됨. 이날, 강여흥(27, 남)·강진흥(26, 남) 형 제도 모함으로 12월 7일 토벌대에 연행됐다 함께 총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