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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 대정면 10. 가파리 가파도에는 1850년대 중반기부터 농번기에 모슬포 주민들이 들어와 농사지으 며 살다가 농사철이 끝나면 돌아가곤 했다. 그러던 1865년, 처음으로 모슬포 상· 하모리에서 주민들이 들어와 정주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제주도의 인구는 20만 명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당시 몇 가지 자료는 가파리 주민 대다수는 나잠 어업을 하며 생활한다고 하면서, 1928년에 호수가 133호, 인구는 864명(남자 425명, 여자 429명)이었다가 10여년 후인 1939년에는 호수가 185호, 인구는 732명으로 줄어든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주민들이 대거 일본 등지로 돈벌이를 갔기 때문이었다. 1 가파리는 인구가 적은 조그만 섬임에도 항일운동이 왕성했다. 가파리, 더 나아 가 대정면의 항일운동은 가파리 출신 김성숙(1896~1976년)과 더불어 시작됐다. 그는 경성에 유학해 경성고보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기미년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일제에 검거돼 고초를 겪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항일운동에 나섰다. 그는 졸업 후인 1921년 고향 가파도에 신유의숙(辛酉義塾)을 설립해 문맹퇴치에 나섰다. 당시 학교를 세우는 데에는 이응신과 향장 이치화, 숙장 김옥천, 김한정, 1) 『생활상태조사』(조선총독부, 1929) 및 『濟州島勢要覽』(제주도청, 193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