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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다. 현황 제주읍 인민위원회는 4·3 시기 목포여관을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 나사로병원이 자리했던 곳으로, 지금은 천년타워 건물이 세워져 당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③ 제주신보사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칠성로 10 (일도1동 1379-1번지) 일대 나. 개요 해방 직후 제주도의 유일한 언론매체는 1945년 10월 1일 창간한 제주민보(濟 州民報) 4 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946년 1월 26일, 제주민보는 미군정법 령 19호에 따라 제호를 제주신보(濟州新報 사장 김진수, 편집국장 백상현)로 개칭 한 후 발간을 지속했다. 제주신보는 제주도의 제반 상황을 취재해 보도하고 있어 지금도 1차 자료가 부족한 해방정국의 제주도를 가장 잘 알려주는 자료로 평가받 고 있다. 1946년 한 해, 제주신보는 경제적 어려움에 정국의 불안까지 겹쳐 많은 어려움 을 겪었다. 제주신보는 1946년 1년간을 조합 형태로 경영하다, 1947년 1월 1일 부터 법인조직으로 재출발했다. 그 후 제주신보는 1947년 3월 1일 경찰의 관덕정 발포사건을 필두로 다른 자료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훌륭한 기사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1948년 4·3 발발을 전후해 제주신보에게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 었다. 그 즈음 기자들은 걸핏하면 경찰이나 서청에 끌려가 고초를 겪곤 했다. 그 4) 제주민보는 1945. 10. 1. 김용수, 이기형 등 6명이 참여하여 창간했다. 창간호는 타블로이드판 반쪽 신문이었고, 11월에 2호까지 발간됐다. 원래 해방 무렵 제주도에서 처음 발간된 일간지는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제주신보’로 알려지고 있 다. 이 제주신보는 1945년 5월경 첫 호가 나오고, 같은 해 9월 25일(호외판 발행. 현재 유일하게 남 아 있음)에 종간호가 발행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1946.1.26. ‘제주민보’가 재창간을 하며 제호를 조선총독부가 썼던 ‘제주신보’로 되돌린 일은 아이러니하다. (고영철, 『제주언론 돌아보기 Ⅰ』, 온누 리디앤피, 2019, 95~1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