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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했던 이력 때문에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홍리 주민들은 1948년 겨울 서귀리를 비롯한 주변 해안마을로 소개했다. 석 달 후 주민들은 마을을 둘러 성을 쌓고 돌아왔다. 당시 동홍리는 본동과 굴왓에 따로 축성했다. 지금도 축성과 관련된 명칭으로 서문네거리라는 지명이 남아 있 다. 이곳은 당시 서쪽 성문이 있었던 장소로 그곳이 네거리여서 생긴 지명이다. 지금은 도로가 확장되면서 성담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현재 동홍동은 아파트촌이 들어서면서 서귀포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 으로 변모했다. 다음은 동홍리의 주요 사건이다. 1948년 12월 1일: 고영순(18, 남)과 부명균(24, 남), 임화종(30, 남) 3명은 경찰서 에 갇혀있다 정방폭포 부근 소남머리에서 총살됨 (서귀리-학살 터-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일대, 참조) 12월 14일: 강정익(19, 남)과 양병준(19, 남), 양태흥(18, 남) 3명이 소남머 리에서 총살됨 12월 30일: 이영춘(58, 여)을 비롯한 오기준 가족 3명이 도피자 가족이라 는 혐의로 무죽시에서 총살됨 (아래 학살터-무죽시, 참조) 1949년 10월 2일: 오기준(26, 남)이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정뜨르비행장 에서 총살됨 (용담리-학살터-제주비행장, 참조) 현재 정부에서 인정한 동홍리 4·3희생자는 47명(남 40명, 여 7명)이다. 1) 학살터 ① 무죽시 가. 소재지 서귀포시 동홍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