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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 대정면 원동에서 원동 주민들과 함께 학살됨 (소길리-잃어버린 마을- 원동, 상가리-학살터-원동 주막번데기, 참조) 11월 28일: 이태언(29, 남, 대정중 교사)은 수업 중 경찰에 연행됐다 영락 리 개동산에서 학살됨 11월: 박양만(30, 남)은 다른 지방 출신으로 마을에서 소사(심부름꾼) 일을 하다 연행된 뒤 행방불명됨 12월 6일: 박인진(23, 남)과 임선진(52, 남)은 인성리로 소개했는데 전날 밤 마을에 삐라가 뿌려지자 이들을 무장대 관계자라며 토벌대 가 연행한 후 학살함 1949년 1월 5일: 강대선(18, 남)과 김성보(15, 남), 강칠주(19, 남) 3명은 대정골 로 소개했는데 지난 12월 대정지서로 연행됐다 이날 총살됨 1950년 7월: 강경도(24, 남)와 김창범(24, 남), 김창욱(29, 남), 김태은(28, 남), 박계방(25, 남), 임달삼(19, 남)은 한국전쟁 발발 후 예비검 속돼 모슬포경찰서에 수감됐다 제주읍 주정공장으로 이송된 후 7월께 행방불명됨 (건입리-민간인 수용소-주정공장(동척회사) 옛터, 참조) 8월 20일: 고영수(22, 남)와 송경탁(22, 남)은 예비검속됐다 섯알오름 일 본군 탄약고터에서 학살됨 한편 송대길(25, 남)은 가족들을 모슬포로 소개시킨 후 혼자 피 신생활을 하다 1949년 봄 체포돼 모슬포경찰서에서 조사받은 뒤 방면됨. 그 후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예비검속돼 상모리 절간고구마 창고에 갇혔다 제주읍 주정공장으로 이송됨. 그는 이날 정뜨르비행장에서 총살됐고, 2008년 유해발굴 후 DNA 감식으로 신원이 확인됨 현재까지 정부가 인정한 신평리 4·3희생자는 모두 90명(남 83명, 여 7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