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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1948년 10월 26일, 주민 6명이 토벌대에 학살됐다. 이들은 전날 밤 마을에서 왓샤 시위가 발생하고, 토벌대가 마을을 포위하면서 마을에 있다 검거된 사람들 이었다. 이날 먼저 송계수(31, 남)가 도망치다 하동 도림못 인근에서 학살됐다. 강 병엽(29, 남)과 강성운(35, 남), 김문(34, 남), 문장선(24, 남), 박도화(28, 남) 5명 은 오오무라(大村) 병사로 끌려갔다가 모슬봉 서쪽 일본군 탄약고터에서 인근 마 을인 무릉2리 인향동과 일과리 주민 24명과 함께 학살됐다. 그 후 11월 20일, 토벌대는 마을에 소개령을 내렸다. 주민들은 모슬포나 대정 고을로 내려갔다. 그러나 젊은이들을 비롯한 대다수의 주민들은 소개하지 않았 다. 주변에 숨을 곳이 많아서였다. 증언에 나오는 곶자왈 안의 주요 은신처를 보 아도 새빈나리, 역구왓, 테우리동산, 숯굽빌레, 부락님굴, 일뤳당코지 등 많았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재 파악되는 신평리 희생자의 대다수는 이런 주변 곶 자왈에 숨었다 학살된 사람들이다. ‘숨을 곳이 많아 오히려 독이 된’ 신평리의 사 례는 우리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1948년 3월 14일: 양은하(27, 남)가 2월 9일 모슬포지서로 연행돼 고문·취조를 받 다 이날 사망함 7월: 박계식(19, 남, 대정중학생)은 7월 미상일에 토벌대에 연행된 뒤 행방불명됨 10월 20일: 김임성(37, 남, 신평리 구장)은 대정지서 신축공사에 협조했다 는 이유로 이날 무장대에 납치된 뒤 학살됨 10월 24일: 송태원(22, 남)과 홍영문(32, 남)은 굴동산 가마터 나무더미에 숨어 있다 토벌대에 발각돼 총살됨 10월 26일: 강병엽(29, 남)과 강성운(35, 남), 김문(34, 남), 문장선(24, 남), 박도화(28, 남) 5명은 이날 아침 마을을 포위한 토벌대에 검거 돼 오오무라병사에 수용됐다 모슬봉 서쪽 일본군 탄약고터에 서 인근 마을주민 24명과 함께 학살됨 11월 6일: 김대윤(28, 남)은 10월 미상일 토벌대에 연행된 뒤 대정면 부 면장 양술생 등과 함께 총살됨 11월 13일: 조만형(53, 남)은 제주경찰서로 조카를 면회하러 가다 소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