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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 대정면 9. 신평리 신평리의 옛 이름은 웃날래, 웃날웨, 또는 샛드르였다. 날래라는 속칭에서 알 수 있듯이 옛날 이곳은 일과리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샛드르는 ‘새로 생긴, 혹은 새 로 개간한 들판’이라는 의미로 한자로 표기하면 신평리(新坪里)가 된다. 신평리는 기록에 따르면 1904년 인구가 111가호에 440명이었다가 1928년에 는 182가호에 1,065명으로 증가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는 신 평곶 숯굽빌레에서 숯 생산이 증가하고, 신평곶이 마을공동목장이 되었다는 점이 다. 둘째는 제주옹기 생산이 대폭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 마을에는 그야말로 가마터 천지라고 할 정도로 가마터가 곳곳에 널려있다. 이렇듯 이곳이 옹기 생산의 주산지가 된 것은 마을 북쪽으로 신평곶과 한수기곶 이 인접해 땔감이 풍부했고, 옹기의 주재료인 양질의 도토(陶土)가 풍부했기 때문 이다. 옹기를 굽는 가마는 옹기 색깔에 따라 노랑굴과 검은굴로 나뉘는데 현재 이 곳에는 노랑굴이 10기, 검은굴 5기, 기와를 굽던 기왓굴이 3기 남아 있다. 대정면의 중산간 마을인 신평리는 모슬봉 정북쪽에 위치해 있다. 마을 북쪽으 로는 곶자왈 지역이 널리 퍼져있어 주민들이 토벌대에 쫓길 때에도 숨기에 좋았 다. 그러나 신평곶의 역구왓에는 무장대의 은거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항상 토벌대의 감시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