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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4) 역사현장 ① 대흘국민학교 가.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중산간 동로 677 (대흘리 1672-1번지) 나. 개요 1948년 11월 20일께 대흘리에 소개령이 내려지고 마을의 모든 집들은 토벌대 에 의해 소각돼 잿더미로 변했다. 이후 살아남은 주민들은 조천, 함덕, 신흥 등지 에서 소개생활을 해야 했고, 다른 일부는 새미오름, 바농오름 근처의 야산에서 피 신생활을 이어갔다. 1950년 4월 마을재건 명령에 따라 대흘, 와흘, 와산, 교래리 주민들은 대흘국민학교 부지에 성을 쌓고 함바집을 지어 2년간 거주했다. 대흘국민학교는 일제강점기인 1941년 3년 과정의 간이학교로 개교해 목조기 와집 1동에서 지역아동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1943년 9월, 대흘공립국 민학교로 승격됐다. 1948년 당시 학생수는 약 50명 정도였다. 대흘국민학교에는 1948년 여름, 토벌군이 2개월여 주둔하기도 했다. 1950년 여러 마을 주민들이 성을 쌓아 함바집에 살던 시기에는 경찰파출소가 성내에 초가를 짓고 둘레에 성 담을 따로 쌓아 주둔했다. 파출소에 근무하던 북한 출신 문봉직(당시 35세) 순경 은 갖가지 악행으로 주민들을 괴롭혔고, 대흘리 처녀를 아내로 삼아 살다가 한국 대흘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