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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제주읍 한편, 제주도 인민위에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했던 사회주의 성향의 인물들 이 많았다. 이들은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미군정과 대립하기 시작했고, 1947년 3·1발포사건 이후에는 경찰에 쫓기는 상황이 됐다. 이들은 그 후 4·3이 격화되면 서 대거 희생됐다. 초기 제주도 각 읍·면 건준이나 인민위원회의 위원장들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대체로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지역유지들이 대부분이었다. 제주읍 현경호(玄景昊), 애월면 김용해(金容海), 한림면 김현국(金顯國), 대정면 우영하(禹寧夏), 안덕면 김봉규(金奉奎), 중문면 강계일(康桂一), 서귀면 오용국(吳 龍國), 남원면 현중홍(玄仲弘), 표선면 조범구(趙範九), 성산면 현여방(玄麗芳), 구 좌면 문도배(文道培), 조천면 김시범(金時範). 이들 중 대정의 우영하와 안덕의 김봉규, 남원의 현중홍, 표선의 조범구, 조천의 김시범 5명은 미군정 하에서 초대 면장을 지냈고, 김봉규와 현중홍은 4·3 발발 이 후인 1948년 5월까지도 면장 직에 있었다. 3 제주읍 인민위원회 사무실 옛터 3) 제민일보 4·3취재반, 『4·3은 말한다』 1권, 전예원, 1994, 69~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