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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번 숨길 민영달 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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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달은 명성황후의 종형제이며,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관직에서 사직하였다.
지혜가 있고 책략에 능해 민씨 척족 중에서 지도적 역할을 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 정부가 남작을 제수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였다.
1918년 이회영이 고종망명계획에 대해 의사를 타진하자 "황제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신하 된 나에게 무슨 이의가 있겠는가? 나는 분골쇄신(粉骨碎身)하더라도 황제의 뒤를 따르겠다." 고 동의하고 거사 자금으로 5만원 (현재가치 약 75억)을 내놓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고종이 급서하면서 실패하였다.
1921년 동아일보사가 어려울 때 5천원을 기증하기도 하였다.
예조판서 재직당시 어느날 파주시 공릉시장 장날에 한성에서 깡패들이 몰려와 갖은 욕설과 구타 등으로 돈을 뺏고 만행을 저질러 수개월 동안 시장을 개설할 수 없게되었다.
그러자 당시 문발리에 살던 민영달에게 조리면 오산리 직강 윤면학이 찾아와 어수선한 공릉시장 실태를 수습해줄 것을 간청하니 "내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 하며 의금부에 요청하여 깡패들을 전부 소탕하니 공릉시장이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민영달 불망비는 현 조리읍사무소 정문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