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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세, 남)는, “빗개를 서다 토벌대가 올라온다는 신호가 오면 주민들과 함께 이곳 통 물홈굴에 와서 숨어지내곤 했다”고 증언했다. 이 굴은 주민들이 오래 피신해 있던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취사도구 같은 대피용품은 가져오지 않았다 한다. 다행히 이굴은 토벌대에 발각되지 않아 주민희생은 없었다. 통물홈굴이란 이름은 주변에 큰 통물이 있어서 붙여졌다. 다. 현황 통물홈굴 주변은 현재 감귤과수원으로 변했다. 그러나 굴이 있는 낭동산은 과 수원보다 10m는 더 높은 동산에 위치해 있어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당시 유물 등 피신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2) 학살터 <용의 자리> 가.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대흘2리 나. 개요 1948년 11월 11일, 무장대를 쫓던 군인들이 대흘2구 주민 10여명을 학살한 곳 이다. 1948년 11월 4일과 11일, 무장대는 조천면사무소와 경찰지서를 습격해 면사 무소를 불태우고 우익인사들을 살해했다. 그러자 11월 11일 군경합동 토벌대는 퇴각하는 무장대를 쫓아 함덕리에서 5㎞ 떨어진 대흘리와 와흘리로 올라와 닥치 는 대로 총질을 해댔다. 이에 놀란 주민들은 주변 야산이나 오름으로 피신했다. 당시 급작스런 토벌대의 습격을 피해 대흘2구 주민들은 용의 자리 인근 야산에 대부분 피신했다. 그러나 이곳은 곧 발각돼 어린 아이에서부터 60대 노인까지 15 명 정도가 한꺼번에 총살되는 비극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