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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 대정면 8. 구억리 4·3 발발 직후인 1948년 4월 28일, 무장대책 김달삼과 9연대장 김익렬은 구억 국민학교에서 4·28 평화회담을 열었다. 당시 이 회담은 4·3 발발 직후 유혈참극 으로 가는 길목에서 열려 전 도민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게 한 획기적인 사건 이었다. 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경찰측의 방해로 평화적 화해는 무산 됐고, 그 후 미군정의 무력진압이 이어지며 제주도는 피바다로 변했다. 원래 구석밧이라 불리던 구억리는 80여 가호의 주민들이 농사와 목축을 하며 살던 중산간의 작은 마을이었다. 현재 구억리는 상동과 하동으로 나뉘어져 있으 나 4·3 이전에는 마을이 상동에만 있었다. 그러나 4·3을 겪으면서 마을의 위치까 지도 변해 4·3 후 마을은 하동으로 옮겨졌다. 구억리 역시 다른 중산간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11월 중순 소개됐다. 그 이전까 지 주요 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48년 4월 21일: 대정면사무소 직원이었던 박근식(27, 남)이 숙직 중 무장대의 습격을 받고 병원으로 후송 중 사망함. 함께 있던 동료 정을진 (23, 남, 하모리)은 현장에서 사망함 6월 29일: 윤자홍(46, 남)・윤성홍(44, 남) 형제가 무장대에게 납치된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