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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년 76세, 남)은, “4·3 때 여기서 교장 선생님도 죽고, 다른 선생님들도 죽고 했잖 아요. 그러니 선생님들이 발령을 받아도 여기로 오려고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는 사표까지 내고 했어요. 그러니 학교를 옮길 수밖에 없었죠” 하고 말했다. 보성국민학교 사건은 1948년 12월 31일, 무장대가 마을 안에 삐라를 뿌린 데 서 시작됐다. 이날 밤 무장대는 마을은 물론 학교에도 삐라를 뿌렸고, 학교에는 인공기까지 꽂았다. 다음날 아침 삐라를 발견하며 깜짝 놀란 주민들은 학교로 삐 라를 가져갔고, 학교는 이 삐라들을 소각해버렸다. 지서에 삐라를 신고하지 않았 다는 것, 그것은 곧 보성국민학교 교사들 학살의 빌미가 됐다. 이에 대해 장승원 이 기억을 더듬었다. “폭도들이 삐라를 학교에 와서 뿌려버렸어요. 삐라를 와서 막 뿌리니까… 어떻게 됐 는지 학교 바로 붙어서 성곽이 둘러져 있었고, 거기에는 보초 근무들도 하고 있었는데 인공기도 꽂아지고, 삐라도 뿌려지고 하니까 학교에 내통이 있다고 해서 교장하고 선 생들을 심어다가 몇 사람 총살시켜 버렸어요.” 이날 무장대의 삐라살포에 대해 토벌대는 다음날인 1월 1일, 교장 송병길(43, 남, 신평리)을 사만질 앞밭에서 공개총살하는 것으로 대응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어 다음날인 1월 2일에는 교사였던 고두윤(22, 남, 중문리)과 김행만(18, 남, 하 효리), 나덕호(23, 남, 하예리), 정용진(21, 남, 하모리), 조석인(46, 남, 보성리), 이 인경(19, 남, 인성리)을 모슬포 오오무라(大村) 병사로 연행했다 1월 5일 모슬봉 에서 집단총살했다. 다. 현황 보성국민학교 옛터는 현 보성초등학교 후문에서 추사로를 따라 신평리 방면으 로 약 500m 가면 나오는 오른쪽 골목길 안쪽에 위치해 있다. 현재는 개인주택 몇 채와 비닐하우스 등이 들어서 있어 과거 학교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