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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다. 현황 서북청년회는 당시 가장 번화가였던 칠성골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현 재 예전 건물은 도로에 편입돼 사라졌다. ② 제주읍 인민위원회 사무실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중앙로 53 (제주시 일도1동 1458-1번지) 일대 나. 개요 1945년 9월 10일 제주도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됐다. 그러다 9월 22일 중앙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건준은 제주도 인민위원회로 이름을 바꿨다. 건준 산하 의 건준청년동맹은 처음 관덕정 건물을 사용했다. 도인민위는 지금의 제주목 관 아지 내 제주도청 사무실과 관덕정을 함께 사용했다. 얼마전 제주목 관아지가 발 굴되면서 제주도 인민위원회의 도장 1 이 발굴돼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제주도 인민위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들과 명망 있는 마을 유지들이 중심이 돼 조직된 단체로 미군정이 전국적으로 인민위의 해산을 명령한 후에도 해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한 강력한 자생조직이었다. 이러한 제주도 인민위의 독특한 특성을 정부의 4·3진상조사 보고서는 다음 여섯 가지로 요약해 설명하고 있다. 첫째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자치 기구였다는 점, 둘째 항일투쟁 경험자들이 주도 했다는 점, 셋째 온건한 정책을 추구했다는 점, 넷째 미군정중대와 밀접한 협력관 계를 유지했다는 점, 다섯째 존속기간이 전국에서 가장 길었다는 점, 여섯째 중앙 이나 전남 인민위 조직과도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어 독자성이 강했다는 점. 제주도 인민위에 대해서는, 1945년 전남도청에 근무했던 미군정 요원 그랜트 미드도 『주한미군정』에서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이 섬에서 하나밖에 없는 정당 인 동시에 모든 면에서 정부 행세를 한 유일한 조직체였다” 2 고 기록하고 있다. 1) 현재 4·3평화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음 2) E. GrantMeade, AmericanMilitaryGovernmentinKorea(NewYork: King’sCrownPress, Columbia Univ., 1951), p.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