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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2025년 4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4월의 독립운동 부 승인을 얻기 위한 외교운동에 매진했다. 1921년 외무총장 신규식은 쑨원[孫文]을 방문해 임시정부와 중국 호법정부(護法政府)의 상호 승인을 달성했으며, 국무총리 이동휘는 러시아에 특사를 파견하여 정부 승인과 독립운동 자금 지원을 약속받았다. 구미위원 부는 미국과 유럽에서 임시정부의 공보활동과 선전 을 담당하는 한편,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외국인들로 구성된 한국친우회의 조직을 지원하였다. 군무부는 국민개병제에 따라 국내외 동포들로 군 대를 편성하고, 전쟁을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하였 다. 임시정부는 1919년 말 육군무관학교를 설립하 고 미국에서 윌로우스 한인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 였다. 1930년대 임시정부는 중국 각지의 군관학교 에 한인청년들을 보내 무관(장교) 양성에 힘썼다. 이 를 바탕으로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을 창설하 여 연합국과 공동작전을 벌였다. 1943년 한국광복 군 산하 인면전구공작대를 인도·버마전선에 파견하 여 영국군의 대일전을 지원했다. 1945년에는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합작하여 ‘독수리작전’이라는 국 내진입작전을 추진하였다. 이 외에도 임시정부는 대한국민을 위한 교육 과 문 화와 구호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한인 교민 등 을 대상으로 한 민족교육과 역사 편찬 등은 학무부 가 담당했으며, 전시 선전활동은 선전부가 담당했 다. 문화부는 중국의 정계·문화계 인사는 물론 외국 인과의 문화 교류 활동 등을 수행했다. 정부 부서 외 에도 임시정부 산하에는 『독립신문』을 발간하는 독 립신문사와 『한일관계사료집』을 편찬한 임시사료편 찬회 등이 있었다. 이들 자료는 오늘날까지도 독립 운동사 연구의 주요한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임시의정원이라는 대의기구 의 뒷받침으로 운영되었다. 임시의정원은 국내외 동 포들의 대표로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되었다. 대한민 국임시의정원 의원들은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을 제정하고, 정부의 예산과 결산을 심의하며, 임시정 부 국무위원 선출과 정부 행정 감독 등 다양한 활동 을 펼쳤다.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임시의정 원은 입법, 재정 편성과 감사, 일반 국정에 대한 견제 1942년 10월 제34회 통합 임시의정원 기념사진 (국가보훈부 제공) 조소앙이 기초한 「대한민국 건국강령」 초안 (국가유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