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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2025년 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보성중학에서 민족교육 받아  1894년 6월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염창 리(현 서울시 강서구 염창동)에서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김도연의 집안은 매우 유족하 여 당시 집 주위에 별로 남의 땅이 없을 정도 로 수천 석의 부농이었다. 7세 때부터 3년 동 안 종조부로부터 천자문과 『동몽선습(童蒙先 習)』을 배운 뒤 한학(漢學)을 수학하였다. 고 향에서 공부하고 있을 무렵 일제가 우리의  국권을 침탈하면서 마침내 1904년 러일전쟁 을 일으켰고, 인천 앞바다의 포성이 그가 사 는 마을까지 울리게 되었다. 일제의 침탈로  나날이 국권이 침탈되어가자 신학문을 배워  민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핵심공적 일본 도쿄에 유학하여 2·8 독립선언을 주도하였고, 미 국 유학 중에도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42년 조선 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다 시 고초를 겪었다.   ■ 건국훈장 애국장 김도연(金度演) 선생 도쿄 2 · 8독립선언 주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다시 고초 미국 유학중 『삼일신보』 발간 광주학생운동 소식듣고  미국 국무성에 지원요청도  “내가 이역 땅에서 겪은 가지가지의 고난은 이루 다  형용할 수 없지만 어쨌든 내가 걸어온 길을 회상해  볼 때에 뉘우침이 없었고, 또 조국과 민족 앞에 떳떳 하였음을 자부하는 것이다.” - 자서전, 『나의 인생백 서』 59쪽에서 - 글  편집부 주요약력 ●  1894년 6월 16일 경기도 김포 출생 ●  1915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조선학회 가입 ●  1919년 1월 조선청년독립단 조직 참여 ●  1919년 2월 8일 도쿄 YMCA회관 독립선언 후  결의문 낭독      도쿄형무소에서 9개월 금고(禁錮) 복역 ●  1926년 미국에서 『삼일신보』 발간 ●  1929년 미국 유학중 광주학생운동 소식을 듣고   미국 국무성 방문, 지원 요청 ●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 ●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당선 ●  1948년 8월 대한민국 초대 재무부 장관 ●  1967년 7월 19일 서울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