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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 조천면 나. 개요 와산 본동에서 남쪽으로 0.5㎞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 20여 가호에 주 민 100여 명이 농사와 축산을 하며 살아가던 조그만 마을이었다. 웃동네에는 웬만 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새물이란 물이 있어서 그 주변으로 마을이 들어섰다. 와산 웃동네는 와산리 전체가 토벌대에 초토화됐던 1948년 11월 22일께 소각 됐다. 그리고 곧 해안마을로 내려가라는 소개령이 내려졌다. 다른 마을과 달리 미 리 주민들이 피신해 있었기 때문에 마을이 방화되던 날이나 소개 당시에 큰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잿더미가 된 마을을 보며 큰 고민에 빠졌다. 토 벌대가 그동안 보여 온 행태를 봤을 때 해안마을인 조천이나 함덕으로 내려간다 고 해서 목숨이 보장되진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남자와 젊은 여자들 은 마을 주변에 남고 주로 어린아이와 노인들만 해안마을로 소개했다. 마을에 남 은 사람들은 낮에는 마을 윗 지경인 왕모루곶이나 동산전, 새미오름에 흩어져 피 신생활을 했고 밤에는 페허가 된 마을로 돌아와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다. 해안마을로 간 사람들은 식구 중에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입산자 가족이란 이유 로 함덕 백사장이나 조천지서 앞밭에서 대살(代殺)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 어졌다. 마을 근처 곶자왈이나 오름에 피 신했던 주민들도 마을 방화 이후 본격화 된 토벌작전에 걸려 하나 둘 총살됐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1949년 봄 대흘국 민학교 터에 성을 쌓아 함바집에서 대흘 을 비롯한 와흘, 교래 주민들과 집단생 활을 하다 1952년도에 와산 본동에 터 를 잡았다. 그러나 웃동네는 재건이 되 지 않아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 있다. 다. 현황 옛 집터들은 현재 덤불에 묻히거나 밭 으로 개간돼 있다. 옛날부터 방물장수가 자주 다녔다는 송당에서 제주목으로 이 웃동네(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