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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 조천면 7. 와산리 와산리는 눈뫼라는 고운 한글 이름을 갖고 있다. 마을의 당오름은 신당이 있다 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와산이란 마을 이름은 오름의 형상이 누워있는 모습 이어서 누운산에서 눈뫼로 불리다가 현자식 표기가 되면서 와산(瓦山)이란 지명 을 갖게 됐다. 와산리는 4·3 시기 본동을 비롯해 웃동네, 종남동, 제비보리, 섯가름 같은 여러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중산간 마을로 130여 가호의 주민들이 살았다. 300여 년의 설촌 역사를 가진 이 마을은 너른 농토와 산야에서 목축업과 농업이 성행했던 넉 넉한 마을이었다. 와산리는 1948년 11월 22일께 중산간 마을에 대한 초토화작 전이 벌어지면서 토벌대에 방화돼 폐허가 됐다. 그 후 일부 주민들은 함덕, 조천 같은 해안마을에서 소개생활을 하다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 학살되기도 했고, 다 른 주민들은 마을 인근 왕모루곶이나 동산전, 새미오름으로 피신했다가 토벌대에 발각돼 총살됐다. 이런 와중에 살아남은 와산 주민들은 1949년 봄 대흘국민학교에 성을 쌓아 대 흘, 와흘, 교래 주민들과 같이 함바집에서 생활하다가 1952년 와산 본동에 돌아 와 마을을 재건했다. 그러나 본동을 제외한 웃동네, 종남동, 제비보리 같은 자연 마을은 그 후 사람이 살지 않아 잃어버린 마을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