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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다. 현황 조선시대 대정현의 동헌이 있었던 자리라 하여 동헌터로 불리는 이곳은 당시 경작지였다. 그러다 1956년, 보성리 서북쪽에 있던 보성국민학교가 이곳으로 옮 겨오면서 지금까지 학교 부지로 이용되고 있다. ② 사만질 앞밭 가. 소재지 서귀포시 대정읍 인성리 나. 개요 이곳은 추사적거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200m 지점으로 제2차 대정지서 옛터에 서도 약 26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대정지서 경찰들이 여러 차례 주민 학 살터로 이용했다. 이곳에서 벌어진 가장 큰 학살사건은 1948년 12월 6일, 경찰이 주민 20여 명 을 공개총살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도피자 가족이나 ‘산과 내통한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지서에 구금했다 총살했다. 이날 희생자 중에는 구억리나 신평리에서 대정고을로 소개왔던 사람들도 포함돼 있었다. 구억리에서 인성리로 소개왔던 박 근호(2003년 74세, 남)는 이날 둘째형을 잃었다. “두 번째 형은 모략에 죽었습니다. 우리 형님 이름이 박근양인데… 고아무개라고 하 는 사람이 ‘근양이도 자기와 같이 쌀 걷으러 다녔다. 입산자 먹을 식량을 걷으러 다녔 다’고 말한 것입니다. 형님은 서귀포에 경찰시험 보러갔다가 돌아온 후에 신고하러 갔 는데 ‘너 잘왔다!’ 하면서, ‘네가 식량 구하러 다녔다고 하는데 사실이냐?’ 다그치니 아 니라고 해봐야 소용이 없었거든요. 반 죽여놓고, 심지어 다리뼈까지 분질러 놓고… 집 을 수색해서 뭐 나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해서 가는데… 하도 맞아서 걷지를 못하니 까 업어서 갔다고 합니다. 지서에서 협조대원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말해주었어요. 그 때 나는 인성리에 있다가 제주시로 피해버렸고, 형님은 인성리에 있었는데… 사만질 거 리에서 죽었다는 말만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