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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 대정면 “전부 나오라고 하니까 어디 명령이라고 안 나갈 수 있나요? 다 나갔죠. 어른이고 아 이고… 아기들은 업고서라도 나갔으니 사람들로 가득했죠. 경찰이 명부를 보면서 호명 을 했어요. 그때 부른 사람이 7~8명 정도로 생각돼요. 경찰이 이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발사명령을 내리자 그 앞에 다 쓰러졌어요. 우리에게 그 광경을 전부 보라고 했죠. 그때 죽은 사람 중에 기억나는 사람이 정두경, 이태일, 강문보… 정도예요. 그런데 이날 총살현장에서 살아나온 사람도 있어요. (오)동백이하고, 정여찬이가 살아왔어요.” 경찰은 이날 도피자 가족이라 하여 ‘당시 집에 없는 사람(즉, 도피자)’ 대신 부모 나 가족을 지목해 호명한 후 총살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이날 총살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무 죄 없는 농민들이었다고 말했다. 이곳 희생자는 여러 증언이 차이가 있지만 현재까지 “보성리는 9명으로 강문보 (32, 남), 고성도(72, 남), 김운기(42, 여), 송두욱(28, 남), 이경인(20, 남), 이경춘 (19, 남), 이태일(19, 남), 정두경(49, 남), 조세옥(15, 남), 인성리는 모두 5명으로 고기창(61, 남), 고추자(18, 여), 기경출(36, 남), 기창민(50, 남), 오희상(29, 남), 안 성리는 모두 2명으로 김성화(44, 여), 이치호(22, 남) 등 16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동헌터(현 보성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