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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 조천면 자 아홉 명이 죽어있었어. 그날 군인들이 9~10시 경에 교래리를 먼저 불태우고, 12시쯤 물터진골로 와서 태운 거야. 그 후 우리 부친과 가족들은 다 신촌리로 소 개를 갔어. 그러나 나는 20세 이상은 내려가도 다 죽인다는 소문에 산으로 피신 했지. 그때 임신 중인 김창종의 각시와 그의 어머니를 내가 묻어주기도 했어. 지 금도 묻어둔 냥 그대로 있을 거야.” 다. 현황 수기동은 고평동과 함께 4·3의 광풍을 비슷하게 겪었다. 현재 당시 주민이나 후 손으로는 우석목장 주인 1가구만 살고 있다. 2001년 4월 3일에 세워진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목장 입구에 외롭게 서 있다. 마을터 흔적은 목장이 조성되면서 거의 사라지고 없다. 라. 찾아가는 길 제주시에서 표선으로 향하는 번영로변 남조로 검문소 가기 전 300m 지점 좌측 에 우석목장 간판이 보인다. 이곳을 기준으로 길 양쪽에 마을이 있었다. 당시 마 을 흔적은 목장 개발로 거의 사라져버렸다. 2) 은신처 <와흘굴> 가.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1595번지 나. 개요 1948년 11월 4일과 11일, 무장대가 조천면사무소와 조천지서를 연속하여 습 격하자 토벌대는 퇴각하는 무장대를 쫓아 와흘1구까지 올라와 마을을 불지르며 본격적인 토벌작전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와흘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