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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 제주4·3유적 Ⅰ_ 제주시편 수기동 출신의 김경생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다 죽어버리고 성한 집안이 우리 밖에 없었어. 그러니 벗도 없는데 가서 혼자만 어떻게 살아?” 라고 말했다. 강인 조(1929년생, 남, 사망)는 와흘리 수기동 출신이다. 그가 11월 13일 상황을 증언 했다. “1948년 11월 13일, 임시 피했다가 마을에 와서 몰방애 있던 곳을 보니 여 잃어버린 마을 - 물터진골 - 여기는 4·3의 와중인 1948년 11월 13일 마을이 전소되어 잃어버린 북제주군 조천읍 와흘리의 한 자연마을 물터진골(水基洞) 터이다. 그 이름이 í��바농오름에 모인 물이 이곳 주민들의 식수였던 새통에 모였다 아래로 흘러간다�� 하여 붙여진 이 마을은 약 300년 전 김명천이 남원읍 의귀리에서 이주하여 우마를 방목하고 화전을 일궈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 물터진골은 해방 후에도 12가호 50여명 의 주민들이 공동체적 유습을 유지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던 제주도의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었다. 그러나 4·3은 이 마을을 피해가지 않았다. 인근 궷드르(古坪洞)와 와흘리가 불 에 타던 그날, 물터진골 주민들은 집을 잃은 설움에 겹쳐 주민 대다수인 40여명 이 희생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날 인근 신촌에서 피난 왔던 여성 9명도 희생되었 다. 마을 재건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아픈 기억이 항상 머릿속에서 꿈틀대고 있 었기 때문이다. 주위로 눈을 돌려 삶의 흔적이 뚜렷이 묻어나는 대나무 숲을 보라. 옛 올레를 걸어 들어가 주민들이 마셨을 새통터를 찾아보고 이들의 아팠던 삶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라. 다시는 이 땅이 4·3사건과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는 영원한 평화 의 섬이기를 바라며 이 표석을 세운다. 2001년 4월 3일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 실무위원회 위원장 제주도지사 <잃어버린 마을 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