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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 사건 후 대정지서는 불에 타 심상소학교터로 옮겨가야 했 다. 이후 대정고을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948년 4월 미상일: 보성리 송기동(19, 남)은 사계리에 다녀오다 토벌대에 연행된 뒤 행방불명됨 8월 미상일: 안성리 오미생(29, 남)은 서북청년단원에게 연행된 뒤 행방불 명됨 9월 13일: 안성리 고군현(22, 남)은 9연대 탈영 후 한라산 표고버섯밭에 숨어있다 토벌대에 발각된 뒤 행방불명됨 가을: 안성리 김성순(19, 남, 군인)은 부대가 제주읍으로 이동한 뒤 행방불명됐으나, 2007년 별도봉 유해발굴에서 유골을 수습함 11월 1일: 보성리 조사옥(53, 남)은 보초를 서던 중 무장대에게 납치된 뒤 살해됨 11월 2일: 보성리 강승옥(28, 남)은 전날 대정지서로 연행돼 고문취조를 받다 이날 총살됨 11월 15일: 보성리 김통손(50, 여)은 무장대에게 쌀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대정지서로 연행된 뒤 고문취조를 받다 총살됨 대정고을에서는 두 건의 집단학살사건이 발생했다. 두 건 모두 도피자 가족이 나 ‘산에 협조한 사람’들을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주민들을 강제동원해 총살장면 을 지켜보도록 한 공개총살사건이었다. 첫 사건은 1948년 11월 20일 동헌터(현 보성초등학교)에서 발생했고 (아래 학살터–동헌터, 참조), 두 번째 사건은 12월 6 일 사만질 앞밭에서 발생했다. (아래 학살터–사만질 앞밭, 참조) 그러나 이 두 사 건에 대해 대정고을 주민들은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학살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 후로도 주민 학살은 계속됐다. 1949년 1월 5일: 보성국민학교 교사 이인경(19, 남, 인성리)과 조석인(46, 남, 보 성리)은 1948년 12월 31일 보성국민학교에 무장대가 인공기 를 게양하고 삐라를 뿌린데 대한 책임을 물어 총살됨 (아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