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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2. 버드리못 버드리못은 주민들의 주요 식수원으로 예로부터 물이 좋아 이 넓은 못 근처에 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집터 대부분이 밭으로 개간돼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주변에 대나무가 무성해 사람들이 살았음을 짐작케 할 뿐 이다. 버드리못은 식수와 우마가 먹던 물이 분리돼 있었고, 못가에는 4·3 당시만 해도 수백 년 된 큰 폭낭이 자리하고 있었다. 3. 궤(실곶궤 / 마을궤) 고평동은 1948년 11월 13일 마을 전체가 초토화된 이후 주민들은 인근 새미오 름, 바늘오름 등지의 곶자왈이나 궤에 피신해 살았다. 당시 마을 인근에 있는 작 은 궤는 사태 초기 토벌대가 마을에 들이닥치면 임시 피신처로 쓰였다. 입구를 나 뭇가지 등으로 위장하면 찾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또한 고평동에서 새미오름 사 이에는 실곶이란 곶자왈이 있는데 이곳에도 실곶궤란 작은 굴이 있었다. 이곳과 관련해 4·3 초기 무장대가 쌀 100마대를 비장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평동 마 을 안길로 100m쯤 가면 개인 묘지가 나오는데 이 묘지를 끼고 500m쯤 더 가서 우측 새미오름 쪽으로 들어가면 실곶궤를 찾을 수 있다. 4. 상뒷동산과 멩당모루 버드리못에서 새미오름 쪽 100m 지점에 있는 높은 지대가 상뒷동산이다. 상뒷 동산은 솟동산이라고도 하는데 4·3 이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회의장소로 많이 이 용했다 한다. 이곳에서 아래를 보면 멀리 해안마을과 바다까지 훤하게 보인다. 4·3 시기에는 이곳에 빗개를 세워 토벌대의 움직임을 감시하곤 했다. 명당동산이 라 불리우는 멩당모루와 상뒷동산 근처에서는 지금도 대나무나 4·3 시기의 집터 흔적을 쉬 찾아볼 수 있다. 라. 찾아가는 길 번영로 남조로 검문소 사거리에서 대흘쪽으로 500m쯤 내려가면 와흘리 고평 동이란 마을 표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