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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 조천면 산에 연결되면 그건 뭐 빨갱이가 되어 다 죽었지. 그날(11월 13일) 군인들이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사람은 다 팡팡 쏘아죽여버렸 어. 총때기(개머리판)로 때려버리면 머리에서 골이 막 나왔고. 허이구!… 우리가 그걸 다 묻었어. 그날 우리 어머니도 집 안에서 죽었어. 집을 그대로 놔두면 산사 람들이 마을에 와서 살고 그런다고 다 불질러버린 거지. 궷드르에서만 그때 한 50 명은 죽었어. 제삿날이 똑같아.” 이날 고평동과 수기동에서 토벌대에 학살된 사람은 강진호(33, 여) 등 고평동 8 명, 강기화(51, 여) 등 수기동 11명, 김창효(23, 남) 등 와흘 하동 출신 3명, 박병 국(16, 남) 등 신촌리 출신 4명해서 모두 26명이다. 다. 현황 4·3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50여 가호의 주민들이 살았다. 폐촌된 후 다른 마을에 비해 늦은 시기인 1957년에야 일시적으로 복구됐다. 2003년 시기 고평 동 원주민으로는 유일하게 김동규가 살았다. 현재 고평동의 드넓은 땅은 거의 외 지인에게 넘어가 4·3으로 인해 주인이 완전히 바뀐 사실상의 잃어버린 마을로 변 했다. 지금도 고평동에는 4·3 시기 오순도순 살았던 주민들의 삶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마을 표석 부근에는 우람한 팽나무가 서 있고, 주위에는 대나무 숲이 듬성 듬성 보인다. 도로변에는 낭뜰에 쉼팡, 산내들맛집, 미소정, 소문난 할머니집 등 유명한 맛집이 많이 들어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마을의 옛 모습이 선연히 눈에 들어온다. 개발이 급속히 진행돼 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다. 1. 궷드르당 고평동의 궷드르당에는 마을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던 커다란 팽나무 신목이 있 었다. 그러나 마을 신앙공동체의 상징이었던 이 신목(神木)은 지난 70년대 벼락 을 맞고 죽어버렸다. 마을에서는 일제강점기에도 산신일월을 모시는 마을 당굿을 이곳에서 지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