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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이 날의 학살은 며칠 전인 11월 16일 무장대의 습격에 대한 보복학살의 성격이 강하다. 신도리는 11월 16일 무장대 습격으로 당시 구장이던 김치부(42, 남)와 그 의 후처(연령미상, 여), 부친 김석지(64, 남), 여동생 김일홍(35, 여) 그리고 전직 경찰 정유문의 부친 정기언(53, 남) 등 5명이 학살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 후 인 1948년 11월 19일, 고산지서 응원경찰대가 들이닥쳤다. 응원경찰대는 마을을 포위하듯 감싸고 주민들을 집합시켰다. 처음에는 구장집으로 집합시키려다 공간 이 좁다며 향사로 모이게 했다. 그리고 주민들을 양반다리로 앉게 한 뒤 군화발로 그 위를 밟고 다니며 습격에 가담한 사람, 남로당에 가입한 사람 등은 자수하라고 연설했다. 당시 이 자리에 있었던 이성봉(남, 2003년 78세)은 “경찰이 사람들에 게 자수하라고 하자 두 사람만 자수하고 더 이상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자 호명을 했어요. 아마 이름이 불리워진 사람은 누군가가 고산지서로 가서 밀고한 사람들 이었던 것 같아요. 이러이러한 사람이 주동자라고 누가 밀고한 거죠. 경찰은 그러 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자수하라고 해도 안 나오자 지명을 한 것 같아요. 이날 부른 사람은 총 9명인데, 이 중 자수한 두 명은 살려주고 나머지 7명은 향사 앞밭 에서 쏘아 죽였어요”라고 증언했다. 토벌대는 끌어낸 주민들을 포박하고 향사 서 녘밭의 북쪽 지경에서 총살했다. 이날 토벌대에게 포박당한 채 끌려가던 주민 중 신도2구 옛 향사 서녘밭